《네 옆자리 reserved》
진영은 도서관 창가 자리를 제일 좋아했다.
햇빛이 책 위로 천천히 움직이고, 시간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그날도 그는 문제집을 펼쳐놓고 있었지만,
사실 한 글자도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맞은편 자리.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문제였다.
정국.
모자도 안 쓰고, 마스크도 안 쓰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었다.
마치 원래 여기 학생인 것처럼.
진영은 시선을 떼려 했지만 실패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
펜을 돌리는 습관,
고개를 숙였다 드는 타이밍까지 —
전부 눈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집중 안 되지.”
진영 심장이 떨어졌다.
정국은 책에서 눈도 안 떼고 말했다.
“…티 났어요?”
“응.”
짧은 대답.
그리고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도서관인데도 진영 귀엔 심장 소리만 울렸다.
정국이 작게 웃었다.
“문제집 10분째 같은 페이지야.”
진영 얼굴이 빨개졌다.
“왜 왔어요… 여기.”
정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 보러.”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더 위험했다.
진영은 말문이 막혔다.
정국이 펜 끝으로 책 모서리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 조용하네.”
“…도서관이니까요.”
“좋다.”
짧은 말.
그리고 덧붙였다.
“너 숨소리 들려서.”
진영 손이 멈췄다.
정국이 시선을 내려 진영 책 위를 봤다.
“공부 도와줄까.”
“…네?”
“이거 틀렸어.”
정국 손가락이 문제를 가리켰다.
진영 눈이 커졌다.
정국이 펜을 들었다.
그리고 종이에 풀이를 적기 시작했다.
글씨가 예상보다 단정했다.
진영은 문제보다 손을 보고 있었다.
정국이 쓰다 말고 물었다.
“왜 계속 봐.”
“…손 예뻐서.”
정적.
펜이 멈췄다.
정국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너 가끔 위험한 말 한다.”
진영 숨이 멎었다.
정국이 종이를 밀어줬다.
“다 풀어놨어.”
진영은 내려다봤다.
문제 아래 작은 글씨가 하나 더 적혀 있었다.
— 끝나면 같이 가자
진영 심장이 크게 뛰었다.
고개를 들었다.
정국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책을 넘기고 있었다.
“나…”
말이 떨렸다.
정국이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응.”
“…여기 자리.”
정국이 시선을 들었다.
진영이 조용히 말했다.
“…맨날 앉아요.”
잠깐 침묵.
정국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알아.”
“…네?”
“그래서 온 거야.”
심장이 또 내려앉았다.
정국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네 옆자리 비어 있길래.”
창밖 햇빛이 조금 움직였다.
책상 위 그림자가 겹쳤다.
그날 이후 —
진영 옆자리에는 항상
예약된 사람이 앉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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